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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성에 갇힌 정책, 신랄하게 지적

“일률적으로 적용한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정부에서 규제혁신에 좀 더 신경 써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글로벌 관점에서 블록체인 활성화를 검토해주시길 바란다.”

출범 2주년을 맞은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25일 발표한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에는 이처럼 한계를 드러내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우려가 조목조목 담겼다. 표면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조력자’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부를 향한 ‘완곡한’ 말 그대로의 권고안으로만 읽힌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숨겨진 뉘앙스가 드러난다. 행간에는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다양한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경직된 문화에 갇혀, 시대와 동떨어진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신랄한 지적이 담겨 있다.

▶“52시간제 유연 적용...암호화폐 제도화해야”=4차위는 권고안을 통해 시대를 거스르는 정부 정책을 촘촘하게 비판했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다.

4차위는 권고안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는 전통적인 노동자와 달리 오직 성과만으로 평가받고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현 정부의 주 52시간제 적용이 좀 유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과 같은 획일적인 정책은 다양화되는 노동 형태를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권고안은 “실리콘밸리에서 출퇴근 시간을 확인하는 회사는 없다”며 “세부적인 지시와 감독보다는 효과적인 협업과 엄정한 성과 평가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내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블록체인 암호화폐 정책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히 했다.

4차위는 블록체인 활성화 제도화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호자산 투기 열풍을 막기 위한 정부의 억제 정책에 국내 블록체인의 글로벌 경쟁력마저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고안은 “암호자산에 대한 법적 지위를 조속히 마련하고 이에 대한 조세, 회계 처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 있는 모빌리티·물류 분야는 정부가 상생에 기반한 생태계 저변이 확대되도록 먼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는 점과 민간의 혁신을 위한 조력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4차위는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의 파급력이 큰 바이오헬스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정책도 여전히 공급자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권고안은 개인주도형 의료데이터 이용을 활성화하고, 글로벌 수준의 규제 합리화를 요구했다. 공공개발 위주로 추진된 스마트시티 정책이 실패한 사례를 거론하며, 민간 중심으로 정책의 틀을 짜야한다고도 했다.

장병규 4차위 위원장은 “지난 시간의 성공전략과 신화를 과감하게 떨쳐내야 한다”며 “우리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면 결국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그는 “그동안 강점으로 작용했던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산업생태계가 지금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고안 법적 강제성은 없어…정책 반영은 ‘미지수’=지난 9개월간 100여 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만든 이번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은 2년 전부터 4차위 2기가 추진한 핵심 업무 가운데 하나다. 권고안은 지난 8일 국무회의에 보고됐으며 이어 10일 4차위 전체회의에서 심의·의결됐다.

다만 권고안은 법적, 제도적 강제할 수단이 없어 실제로 정부 정책에 반영될 지는 미지수다. 장병규 위원장도 다음 달로 임기가 끝나는 상황이어서 4차위가 마련한 이번 권고안이 일회성 이벤트라는 지적도 있다.

4차위 관계자는 “심의·조정 기능만 갖추고 있다는 위원회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며 “다만 앞으로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이번 권고안 내용을 가이드라인으로 두고 그 내용은 참고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d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