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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실시간 코인 투자”

“처음엔 100만 원으로 시작했는데, 그러다 구렁텅이에 빠진 거예요. (웃음) 일주일이 지나자 200만 원이 됐고, 100만 원을 더 넣어 400만 원이 됐어요. 한 달도 되지 않아 900만 원이 되더라고요.”

1년에 작품 7~8편, 촉망받던 젊은 연출가는 난데없이 강화도로 떠났다. 그때가 2018년이었다. “창작자로서의 끊임없는 자기증명”에 신물이 났던 시기였다고 한다.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스템 밖으로 도망간 곳”은 강화도였다. “도시와 자본과의 거리두기를 하고 싶었어요.” 강화도에서의 생활은 너그러웠다. 친구들과 텃밭을 가꾸고, 지역 예술인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듯했다. 그런 전윤환 연출가에게 코로나19 시대의 ‘코인 광풍’이 찾아 들었다.

연극 ‘자연빵’은 연출가 전윤환(사진)의 ‘가상화폐(코인) 투자기’를 담았다. 강화도에서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까지 약 3시간. 긴 시간 여행하듯 도시로 나온 전윤환 연출가를 만났다. 그는 “10여년간 연극으로 번 돈을 모두 투자해 반토막이 나는 데에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지금은 마이너스 80%예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공연은 하고 있잖아요. (웃음)”

지난 한 해 ‘영끌’이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청년 세대의 주식과 코인 열풍, 부동사 투자 열기는 사회적 이슈가 됐다. ‘자연빵’(8월 4~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은 연출가 전윤환의 이야기이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 세대의 자화상이다. 1시간 10분 짜리 연극은 아찔하다. 무대에선 티켓 수익금을 실시간으로 코인에 투자하고, 시시각각 날뛰는 코인 그래프를 띄워두며 관객과 허망함(?)을 공유한다. 가상화폐는 여전히 하락장이기 때문이다.

전윤환은 “텃밭을 가꾸는 것과 비트코인에 투자라는 것은 극과 극의 삶”이라며 “그런 괴리가 왜 일어나는지, 그 내적 갈등이 왜 생기는지, 섬에까지 가서 왜 자본을 쫓게 되는지를 공연 안에서 자전적으로 풀어간다”고 말했다. “작년과 올해 상황은 또 달라졌어요. 코인 시장은 여전히 하락세고, 금리는 오르고 있고요. 희망을 걸고 대출까지 받은 청년들은 이자를 갚기 위해 삶을 다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청년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제대로 된 사다리 없는 불평등한 사회 안에서 허무맹랑한 가상화폐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 사회가 함께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의 연극 제작과정은 ‘경험의 산물’이다. 전 재산을 털어넣은 코인 투자 역시 ‘리서치의 연장’이었다. “리서치와 공부를 통해 체화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나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삶에서 건져 올린 주제에 대해 어떻게 수행성을 가져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리서치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 질문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이 내 이야기로 머물지 않고 사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고민을 하고 있어요. 개인의 특수성이 어떻게 하면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죠.”

전윤환의 연극은, 개인이면서 우리이고, 특수하면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오간다. 그는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찰하고 수행하는 것 같다”며 “연극은 내게 다른 입장이 되어보기, 혹은 나를 더 정면으로 응시해보기의 과정”이라고 했다. 전윤환의 연극 안엔 청년 예술가의 불안한 삶과 성장이 담겼고, 그의 시대 인식과 가치관이 담겼다. 현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다분히 절망적이나, 풀어가는 방식엔 전윤환만의 유머가 있어 웃음과 슬픔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그런데 전 가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업에 마음이 어려워지더라고요. 오히려 희망 없음을 이야기하는 작업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져요. 어쩌면 이 작업도 굉장히 절망적이에요. 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승희 기자